1. 라드브루호의 公式
양심적이고 진지한 법철학자 리드브루흐는 나치시대의 불법체제를 고통스럽게 경험하고 난 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나치시대의 법체계를 청산하려는 이론적 시도로서 「실정법의 외양을 띤 불법(不法)과 실정법을 넘어서는 법」(1946)이라는 논문에서 이른바 '불법판단공식'을 제시한 바 있다.
▶ 라드브루흐의 불법판단공식
모든 실정법은 그 내용과는 상관없이 분명히 법적 안정성이라는 가치를 실현한다. 법률의 법적 안정성을 보장하기 때문에 무법상태보다는 낫다. 그러나 법적 안정성이 법이 실현해야 할 유일한 가치는 아니며 결정적인 가치도 아니다.··· 법률의 내용을 판별하게 해 주는 가치인 정의와 법적 안정성 사이의 갈등은 다음과 같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① 절차에 맞게 제정되었고 강제력에 의해 보장되는 실정법은 설령 그 내용이 정의롭지 못하고 그 목적이 부당하다고 하더라도 일단 정의의 우선권을 갖는다.
② 그러나 실정법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정의원리를 위반하기에 이르렀다면, 부정의한 법률에 의해서 보장될 법적 안정성은 정의보다 하위의 가치가 된다.-'참을 수 없음' 기준
③ 물론 법이 어떤 경우에 법률의 외관은 띠지만 법이 아닌 '법률적 불법'이 되는지, 또 어떤 경우에 그 내용이 부정당하기는 하지만 법으로서 효력을 갖는 법률이 되는지를 확연하게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은 없다. 다만 다음의 경계선은 명백하게 확정할 수 있다. 어떤 법률이 정의의 핵심을 의도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경우 그 법률은 단순히 악법에 그치지 않고 애초부터 법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다.-'의도적 부정' 기준
라드브루흐의 공식은 결국 다음과 같은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첫째, 실정법이 정의의 본질적 요청인 "같은 것은 같게 대우하라."는 평등원리를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묵살한 경우, 그 실정법은 단순히 부정의한 법률이 아니라 아예 법이 아니다. 둘째, 인간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고 기본적인 인권을 부정하는 실정법도 법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다. 셋째, 범죄의 경중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단지 순간적인 위협을 목적으로, 상이한 등급의 위법행위에 대하여 사형과 같은 극형을 동일하게 부과하는 형벌규정도 법으로서의 자격을 가지지 못한다.
위와 같은 실정법들은 '법률의 외관을 띠고는 있으나 실은 법이 아닌 법률적 불법, 즉, '법률의 탈을 쓴 불법' 이다.
2. 법의 등급
① 정당한 법률
② 부정당한 법률
- 정의의 원칙을 많은 점에서 실현하지 못하고 있지만, 법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거나 복종의무를 거부할 수 잇는 종류의 법률은 아닌 경우: 정의이념의 주변을 침해하는 종류의 법률
- 정의의 핵심을 의도적으로 침해하여 애초부터 법으로서의 자격까지 박탈당하여 그에 대한 복종의무조차 없는 경우: 특정집단의 인간을 '인간이하'로 취급하여 이들의 기본적 인권을 부정하는 법률, 정치적 반대자들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처형을 규정하는 법률(당연 무효인 악법=극도로 부정의한 법률)
라드부르흐는 법개념과 법효력을 논할 때, 적어도 일반시민들이 법률에 대해서 부여하는 의미와 기대를 '어느 정도' 고려해야 한다고 전제한다. 즉, "규칙을 일관되게 적용하라." "같은 사례는 같게 다루라."는 등 최소한도의 도덕적 요청이나 기대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따라서 법개념의 법효력에 대한 논의는 '정의를 향한 노력' 이라는 최소한의 요구를 포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어떤 법률의 내용이 극도로 부정의하여 누구라도 명확하게 그 부당함을 인식할 수 있어서 그 법률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행위할 경우 그 시점에 이미 도덕적으로 비난을 면하지 못할 것임이 명약관화하다면, 설사 그 법률이 제정된 당시 강제력에 의해 위협된다고 하더라도 그 법률을 법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시 반론은 계속될 수 있다.
▶ 라드부르후의 공식에 대한 반론
극도로 부정의한 법률들은 도덕적으로 나쁜 법률일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법이며, 도덕적으로 복종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법으로서 가치는 구속력을 박탈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러한 법률들이 있어왔고, 여전히 법으로서 사람들의 행위를 강제하고 있으므로, 누군가가 그러한 법률들을 법이 아니라고 주장해도 현실적으로 별 소용이 없다.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VI 법복종의 의무와 시민불복종 P-171
지금까지 우리는 도데체 법이 무었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현실적인 과제로 법효력을 논의하였다. 우리가 법에 대하여 탐구한다는 것은 이미 '유효한 법'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으로부터 시작하여 그 효력의 본질, 그리고 효력의 근거에 대하여 다양한 관점의 이론들을 살펴보고 잠정적인 정리를 제시하였다. 결국 법에 있어서 강제성의 요소는 국가권력에 의해 제정되고 그 집행이 보장된다는 데 있고, 실효성의 요소는 국가권력에 의한 집행과 함께 사회구성원들의 자신들의 행위를 규율하는 규범으로서 승인하는 데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법의 본질적 요소의 하나인 강제성과 실효성은 사실 법에 대한 여러 관점들 중 한 측면만을 말하는 것이다. 무엇이 법인가, 무엇이 법의 자격을 갖는가, 어떤 법이 효력을 갖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법효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등의 질문들이 한쪽의 관점이라면, 사람들이 어던 법을 지키는가, 사람들은 왜 법을 준수하는가, 사람들이 법을 준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등의 질문은 같은 뿌리에 대한 탐구이지만 또 다른 영역이라고 할 수 잇다. 법에 있어서 강제와 실효성 요소는 그 법을 받아들이는 수범자(受範者, 法律이 구속할 수 있는 정당한 자격, 권능)의 법복종의 의무라는 응용된 차원에서 또 한번 새로이 탐구될 수 있다.
아래의 법복종의 의무를 낳는 근거를 살펴보고, 법복종을 거부하는 시민불복종의 일반 원칙, 시민불복종의 이냠과 정당화 판단기준 등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1. 법복종의 의무를 낳는 근거
우리가 법이라고 말할 때 '유효한 법'을 전제하고 있듯이, '법은 지켜져야 한다.'라는 법복종의 의무 역시 포함하고 있다. 이렇게 법복종의 의무가 당연하게 전제되거나 법내재적 요소로 여겨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왜 법을 준수하는가? 어떤 이유로 인해 우리들은 법에 복종하는가? 이 질문에는 다양한 답이 제시된다.
첫째, 처벌회피나 자기이익보존의 차원에서 법복종의 의무를 설명할 수 있다.
법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법복종이 가져다주는 편리함이나 유익함에 있다는 주장이다. 즉, 법에 복종하는 것은 자기의 이익을 보존하기 위해서이고, 또한 불복종으로 인한 처벌은 자기에게 불이익이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입장에 따르면, 만일 법불복종이 법복종보다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면 우리는 언제라도 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게 된다는 결점이 있다. 즉, 이러한 견해는 한편으로는 부정의한 국가권력의 자의적인 법제정과 집행, 법담당자들의 부패와 자의성 등으로 인한 법만능주의,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각 구성원들의 '무임승차' 의식' 자기이익극대화의 심리 등의 법무시주의가 동시에 나타나는 상황에서는 적절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한다.
둘째, 법은 구성원들 사이의 약속(동의)이기 때문에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차원에서 법복종의 의무를 설명할 수 있다. 어느 시대 어는 사회에서나 약속을 지켜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약속을 지키는 것은 좋은 덕목이라는 논리로부터 법복종의 의무를 도출한다. 즉, 국가와 법에 대한 복종은 그렇게 하기로 한 개인의 동의(약속) 행위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입장은 도데체 약속은 왜 지켜져야 하는가라는 보다 본질적인 물음을 야기한다. 그리고 법도 하나의 약속(동의)이라고 본다면 이런 설명은 일종의 동어반복으로 아무 대담을 하지 않은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셋째,사회의 공정성, 즉 상호이익과 상호제한의 차원에서 법복종의 의무를 설명할 수 있다. 사회는 그 구성원들의 행복을 위해 결합되었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해택을 받고 안전을 보장받는다. 따라서 내가 국가나 사회에 협력함으로써 혜택을 받았다면 상호주의 원리에 의하여 나도 국가나 사회에 협력해야 하고, 나의 자유 역시 그 범위 안에서 행사해야 할 의무가 생겨난다는 논리이다. 이 입장은 개인과 사회, 국민과 국가의 관계 속에서 법을 파악하고, 그에 따라 법복종의 의무를 도출하려는 것이지만, 궁극적인 차원에서 개인의 법복종의 의무에 대한 설명이 약하다는 한계가 지적된다.
넷째,공공복리의 차원에서 법복종의 의무를 설명할 수 있다. 국가는 다른 공동체들 및 조직들이 줄 수 없는 재화나 혜택들을 나에게 주고 있기 때문에 나는 국가와 법에 복종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여기에는 국가와 같은 조직된 정치공동체가 아니고서는 각 개인에게 필수적인 기본 재화들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점을 전제하고 있다. 이 입장은 앞의 자기이익 차원과 공정성 차원의 설명을 결합한 구체적인 이해라고 볼 수 있지만, 여전히 법복종의 의무에 대하여는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즉, 국가가 나에게 혜택을 준 바가 없는 경우에는 어떠할까? 만약 그렇다면 국가가 나에게 아무 것도 제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는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결국 이 설명은 첫 번째 설명인 자기이익의 극대화 논리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다섯째, 법적 안정성, 즉 질서와 평화의 차원에서 법복종의 의무를 설명할 수 있다. 만일 법의 내용이 부정의하다는 이유로 법에 불복종한다면 법질서와 사회질서는 붕괴될 것이다. 다시 말해 각 개인이 법의 정당성을 판단하고 그에 따라 법을 지키지 않게 된다면 그 사회의 전체 질서는 붕괴될 것이라는 논리이다. 이 입장은 '아무리 악법이라고 하더라도 법이 없는 상태보다 낫다.'라는 전제하에 질서와 평화를 중시하여 일반적인 법복종의 의무의 근거를 마련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입장은 법복종의 의무가 궁극적으로 개인의 자유에 근거하지 않은 경우 단지 강제에 머무르게 될 것이라는 반론, 그리고 실천적 정당성을 배제한 질서마저도 지켜져야 하는가라는 반론에 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여섯째, 시민적 덕목에서 비롯되는 의무로부터 법복종의 의무를 설명할 수 있다. 시민적 덕목(civic virtue)이란 '사적 이익뿐만 아니라 공공적 이익도 고려하면서 양자 사인의 형량 시 공공선을 우선시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 입장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자신을 포함한 공동체구성원들을 인간답게 살게 해 주는 '잘 질서 잡힌 사회'로 되기를 바라는 가치지향 및 헌신을 핵심으로 한다. 애국심(긍정적 의미에서), 공동체에 대한 헌신 등도 시민적 덕목을 표현하는 용어이다.
2. 법불복종은 어떤 경우에 정당화되는가?
만일 법에 불복종하는 것이 법에 복종하는 것보다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면 내가 법에 복종할 '개인적으로는 합리적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만일 법불복종이 나의 개인적인 또는 내가 속한 사회의 집단적 이익을 지키려는 목적에서 나온 경우라면 법불복종의 정당성이 없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단순화시켜 보면, 결국 법불복종의 정당성은 구체적인 상황맥락 속에서 법에 대한 저항이 낳을 공공적 이익과 그 저항이 지불해야 할 비용(손해: 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이기심에 근거한 법불복종의 만연 등) 사이의 비교형량에서 판단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법의 부정의함이 너무도 '커서 감내할 수 없는 경우'에, '진지한 양심에 비추어서', '비폭력적으로', '공공적으로' 법에 불복종하는 경우에 법불복종이 정당하다는 일반적인 원칙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다음 사상가들의 견해를 들어서 살펴보도록 하자.
핸리 데이비드 소로우 (Henry David Thoreay, 1817~1862)는 불법을 저질러서는 아니된다는 최고의 도덕원리로부터 다음과 같은 시민불복종의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① 사람은 불법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② 부정의한 것을 지지한다면 불법을 행하는 것이다.
③ 부정의한 법을 제정하고 집행하는 국가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은 국가의 불법을 지지하는 것이다.
④ 국가가 부정의한 정책이나 법을 시행하는 경우에는 시민은 저항을 하여야 한다.
⑤ 저항의 방식은 '정중하고', '비폭력적'인 방식이어야 한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법정신을 최고도로 존중하는 행동으로서 시민불복종의 기준을 제시하였다.
① 법에 부정의가 존재하는가를 결정: 인간의 인격을 심하게 훼손하는 경우, 한 집단에는 적용하면서 다른 집단에는 적용하지 않는 경우, 진정한 대표기관에 의해서 제정되지 않은 경우, 법 자체는 정당하지만 그 적용이 자의적이어서 공평하지 않은 경우가 법이 부정의한 기준이다.
② 협상: 다각도로 협상을 시도하여야 한다.
③ 자기성찰: 양심에 비추어서 문제의 법이 부정의한가를 판단하여야 한다.
④ 비폭력적인 직접적 행동: 직접적 행동: 비폭력적으로 불복종하면서도, 투옥될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존 롤스는 시민불복종을 '상당한 정도로 부정의한 법이나 정책을 개선할 것을 목적으로 공공적으로, 비폭력적으로 법을 위반하는 양심적인 정치적 행위'로 풀이한 후 그 정당성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① 시민의 자연적인 의무: 사회제도의 정의로움과 능률성을 진작해야 할 의무
② 법의 부정의함이 일정한 정도를 넘어야 할 것: 그 정도를 넘기 전까지는 복종해야 한다.
--- 법이나 정책이 '중대하게 부정의하며', '상당한 기간 동안 지속'되어온 경우에는 이는 구조적이고 지속적으로 부정의한 법에 대한 저항이므로 정당하다.
--- '실질적이고 분명한 정의이념응 위반한 경우'에 한정: 사소하고 불분명한 위반은 시민불복종에 해당하지 않는다.
--- 만일 이런 비슷한 종류의 부정의함에 대하여 나와 마찬가지로 다른 시민들 역시 불복종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한다.
③ 시민불복종은 '합리적으로 행사'되어야 하고, 불복종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이성적인 방법을 사용하여야 한다.
한국의 현대사에서도 법을 준수하는 시민이나 법복종주의자들보다 시민불복종주의자나 법률불복종주의자가 도덕적으로 더 정당성이 있다고 인정되던 시대가 있었다. 그런 시기를 겪고 난 현재으 한국사회는 이제 한편으로는 법불복종의 정당성을 인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법복종의 의무를 강조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가령 우리 헌법 전문의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구절은 시민불복종이 우리 헌법의 정신에 반하는 것이 아님을 시사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민주화 정착의 단계에서 가장 먼저 해결되어야 할 문제는 합리적 의사결정을 정착시키고, 법의 권위(=의무 이행)를 확보하는 것이라는 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면 이제부터 민주적 입헌국가에서 시민불복종이 갖는 의미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살펴보기로한다. 특히 시민불복종이 과연 민주적 정의 실현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하여 그 요건과 내용을 살펴보자.
3. 민주적 정의의 실현으로서의 시민불복종.........................p~175 수정 2022.2.4 am:01.52
일반적으로 시민불복종은 '어떤 정부의 정책이나 법이 매우 부당하여 인간존엄의 가치와 근본적 정의원리 및 공공이익을 계속해서 심걱하게 훼손한다는 점을 사회구성원 전체에게 알리면서, 그 정책이나 법을 변경 또는 폐지하려는 목적에서 양심적 진지서을 가지고 다수의 정의감에 호소하여 실정법을 공적(公的)이고,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위반하는 정치적 행위'로 풀이하고 있다. 좀 더 상세히 살펴본다면 법불복종으로서의 시민불복종은 시민성. 공공성. 비폭력성. 양심성 등의 네 가지 요건들로 구성된다.
(1) 시민성
시민불복종의 요건 중 첫 번째는 법불복종의 주체에 관한 것으로서 '시민성'(civility)이다. '시민' 이란 단순한 '사적 개인'이 아니라 민주적인 정치적 공동체의 구성원, 즉 법적.제도적 차원에서의 민주적 의사형성의 결함을 인식하고 공론의 장에서 개선하려는 의식을 가진 개인 또는 단체를 말한다. 시민성이란 이러한 시민으로서 가져야 하는 덕목과 관련된 개념으로, 이른바 '시민적 용기'(civil courage)로 표현되는 품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시민성' 요건은 구체적으로 공통적인 민주적 확신에 바탕을 둔 조직적 행위일 것(조직성.집단성), 그리고 국가권력이나 시장권력으로부터 독자성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행동할 것(자발성)을 그 내용으로 한다.
(2) 공공성
법불복종의 공공성(公共性, publicity) 요건은 대체로 다음의 두 가지 요청을 내용으로 한다. 우선 법위반의 방식과 관련된 것으로, 법불복종은 공개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는 공개성의 요청이다. 즉, 법불복종자들은 자신들의 주장내용과 그 근거 그리고 실정법위반의 행동을 공중(公衆)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국가권력에 대해서도 공식적으로 천명함으로써 불복종운동의 시위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예측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공성의 또 다른 내용으로는 법불복종의 명분이 일반시민들이 정당하다고 받아들이는 공적인 정의원리들에 비추어서 정당화될 수 있어야 한다는 '공공적 정당화 가능성'(public justifiability) 요청이다. 법불복종종자는 자신이 옮다고 믿는 불복종행위를 특정한 종교적. 정치적 교의나 개인적 윤리적 확신에 비추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을 넘어서 공적인 논의를 통하여 그 정당성주장이 전체 사회구성원들에게 인정될 수 있도록 할 의무를 가지는 것이다.
(3) 비폭력성
시민불복종은 일반적으로 비폭혁적인 정중한 정치적 항의로 받아들여진다. 비폭력적 행위란 고의로(의도적으로 또는 그럴 결과가 발생할 줄 알면서) 개인의 신체와 재산에 대한 해악을 야기하지 않는 행위를 말한다. 법불복종행위는 폭력적으로 수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비폭력성의 요건은 톨스토이와 간디에 의해서 주창되었다. 하지만 과연 언제나, 그리고 어느 범위까지 시민불복종은 비폭력적이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논란이 많다. 가령 폭력을 행사하는 시민불복종과 비폭력적 시민불복종을 구분하고, 후자는 언제나 도덕적으로 정당화(법적으로 정당화되는지, 즉 합법적인지 여부는 차치한다면)되지만 전자의 경우는 대부분의 경우에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지는 못한다(그리고 법적으로도 정당화되지 못한다)고 파악할 수도 있다. 즉, 비폭력성의 요건을 시민 불복종의 개념요건으로 보지 말고 시민불복종의 정당화 요건으로 보자는 입장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시민불복종은 '주로 비폭력적 수단을 사용하는 공공적이고 양심적인 법위반행위'로 풀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시민 불복종은 폭력을 전혀 행사하지 않는 법불복종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비폭력성 요건은 폭력행위의 개념을 살펴봄으로써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폭력 개념을 단순하게 형법적 관점에서 다루어 시민불복종의 비폭력성을 맹 좁게 제한하는 것은 사실상 민주적 입헌국가에서 시민 불복종운동의 가능성의 폭을 맹 축소시킬 위험이 있다 따라서 폭력 개념에 대한 보다 세밀한 검토를 하는 것이 시민 불복종의 합리적 핵심을 살리면서도 민주적 입헌국가의 발전을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이 되리라고 본다.
법 불복종과 관련해서 우리는 비폭력적 행위란
① 순수하게 설득의 전략을 사용하거나
② 강요의 전략을 사용하며 강제적이고 위협적인 행위이기는 하지만 신체와 재산에 의도적인 해악을 발생시키지는 않는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비폭력적 저항은 약자를 보호하고, 공정한 사회적 부정의를 교정하고, 폭압적 정권에 저항할 목적으로 국가의 판단과 선택에 강제를 가하는 위협전략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신체와 재산에 해악을 끼치는 폭혁을 사용하지는 않는 투재의 방식을 말한다.
(4) 양심성: '처벌감수자세'와 불복종 동기의 '고급성'
시민불복종의 양심성은 시민불복종 주체들의 동기, 의도와 주관적 의사에 관련된 요건이다. 먼저 우리는 양심성에서 '처벌감수 자세'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법불복종이 시민불복종으로 승격되는 가장 중요한 속성을 꼽으라면 '부당하다고 판단되는 법과 정책의 개선을 목적으로 행한 법불복종의 결과를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자세', 즉 실정법위반으로 인한 처벌을 받게 되더라도 감수하려는 태도이다. 처벌까지도 감수하겠다는 진지한 자세를 통하여 기존 법규범을 교정하고 변화시키겠다는 태도야말로 보통의 범법자와는 다른 시민불복종의 양심적 진지성을 보여 주는 중요한 속성이다.
여기에서 처벌 감수 자세는 일종의 무조건적인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 까닭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시민불복종자들이 기꺼이 처벌을 감수하는 자세를 보임으로써 시민불복종행위에 의해서 자신들의 이익이 침해되었다고 느끼는 여타의 사람들의 분노나 불안감이 감소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민불복종자들의 처벌 감수 자세는 불복종행위자들이 상대방에 대해서 가지는 존중심, 심지어는 그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기 때문에 시민 불복종행위 자체 속에 이미 불복종행위의 동기가 구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이유는, 처벌감수자세는 시민 불복종행위자들이 가지는 신념의 깊이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표면적인 명분만 그렇지 자신의 이익을 실현할 뿐인 위선적인 불복종이거나 과장된 행위가 결코 아니라는 점을 보여 주면서 다른 시민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고 그들의 내면을 변화시킬 수 있는 도덕적 힘을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시민 불복종운동은 개인과 사회가 인간존중의 가치를 체득해 가면서 좀 더 성숙한 개인과 사회로 변모해 가는 '사회적 학습과정'이 된다. 이는 시민 불복종을 주창했던 사상가들이 실현하고자 했던 '영성적 사회운동'으로서의 시민 불복종운동의 목표이기도 하다.
셋째, 처벌감수자세는 시민 불복종주체들이 가지는 신념의 강도를 판별하는 좋은 심사기준이 된다. '과연 나는 불복종의 결과인 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불복종 할 수 있겠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은으로써 자신의 도덕적 판단에 대한 겸허함을 갖추게 되고, 이를 통해 시민 불복종주체들의 행위는 다른 시민에게 보다 강한 감화를 주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옮음.정의 공익을 위해서 진실로 자신을 희생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심지어 적이라 할지라도, 도덕적 감화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처벌감수자세는 특정한 법이나 정책에는 반대하지만 자신이 속한 민주적인 정치공동체의 법질서 자체를 존중한다는 법 복종의무를 보여 주는 휼륭한 증거가 된다. 게다가 국가가 저지른 부정의(국가책임원리)에 대해서 공동체 전체(공동책임원리)뿐만 아니라 자신도 부분적인 책임을 진다는 겸허함(개인적 책임 분담원리)은 시민 불복종운동의 도덕적 정당성을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다음에 우리가 살펴볼 것은 법불복종의 양심성 요건으로 법불복종 동기의 '고급성' 요청이가. 앞선 처벌감수자세가 양심성의 주관적 요건이라면 동기의 고급성 요청은 그 내용에 대한 요건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단순히 법불복종의 형식만을 판단한다면 경우에 따라서 광신자들이나 극단적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법무시행위와의 차별성을 어디에서 찿을 수 있을 것인가? 더욱이 광신자들이나 극단적 인종차별주의자들 역시 기꺼이 처벌을 감수하는 자세를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보면 그 차별성은 더욱 중요해진다. 따라서 시민 불복종자들은 '왜 불복종하는가?' 라는 동기에 대해 역시 양심적 진지성을 가지고 있음을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른바 동기의 '고급성'이야말로 시민불복종이 터무니없는 법무시행위와 차별화되는 본질적 속성이다.
시민불복종은 사적이고 당파적인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가 아닌 공공선을 위해 법을 위반하는 행위이다. 이는 도덕적으로 정당한 가치들의 복원이나 보존을 목적으로 행해진다는 점에서 다른 법불복종행위들과 차이가 나지만, 법불복종행위자들이 모두 '자신의 세계관. 정치관 .윤리관'에 비추어 정당하다고 믿는 가치들의 복원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과연 그 타당성은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 동기의 고급성과 주관적 확신의 타당성은 결국 입헌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정치적 도덕원리들에 비추어 판단할 수밖에 없다. 한 정치적 공동체가 입헌민주적 공동체임을 보여 줄 판단기준들은, 동등한 인간존엄성('모든 개인은 자유롭고 평등한 도덕적 능력을 가진 존재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가치)이라는 최고 가치를 실현하는 3대 원리, 즉 민주적 공동체구성원으로서의 평등성(시민적 평등성) 보장, 동등한 자유 보장, 기본적 기회들의 균등 보장을 내용으로 한다. 이 원리들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대체로 광범위한 이성적 합의가 존재한다. 이러한 이성적 합의는 근대 민주주의 헌법 속으로 편입되어 있으며, 우리 헌법도 에외는 아니다. 우리 헌법에 구현되어 있는 민주적 정의의 3대 원리를 심대하고 반복적으로 훼손하는 정책이나 법률을 교정. 개선할 목적에서 수행되는 법불복종이라면 일단 그 동기의 고급성이 있다고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4. 시민불복종의 정당화 판단기준
이제는 시민불복종을 정리할 단계이다. 이를 위한 마지막 질문은 '과연 시민불복종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어떤 법불복종행위가 시민성. 공공성.비폭력성. 양심성의 요건을 충족하면 곧바로 정당한 시민 불복종이 되는가? 그리고 시민 불복종이기만 하면 언제나 정당화되는 것인가? 아니면 시민불복종행위들 중에서 특정한 조건들을 충족하는 시민 불복종행위만이 정당화되는가? 개인들이 또는 시민단체들이 자신의 법불복종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이 물음들은 상당한 실천적 중요성을 갖는다. 시민 불복종 주체들은 자신들의 법불복종이 정당하다고 주장할 터인데 과연 기준에 의해서 그 정당성 주장이 판단되어야 하는가?
시민불복종을 수행하는 경우 정당한 법불복종의 기준을 마련해 보도록 하자.
1. 법제정. 법적용. 법집행의 절차적 조건을 충족하는 한에서 법질서는 일 단 정당한 권위를 가지며, 전체 법질서가 정당한 권위를 가지는 한 시민들은 구체적인 악법들에 대하여도 일단 복종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그 악법이 부정의한 정도가 극심한 경우에는 불복종하는 것이 정당하다.
2. 어떤 법률이 극도로 부정의하다는 것은 그 법률이 인간존엄성의 핵심요소를 부정하는 경우이다. 동등한 인간존엄성 원리를 명백하게 침해하여 기본적 인권을 완전히 훼손하는 법률들에 대한 법불복종은 즉각적으로 정당화 된다.
3. 극도로 부정의하지 않은 법에 대해서는 일단 복종하는 것 역시 시민의 덕목이다. 그러나 정의이념을 극도로 침해하여 합리적 평등과 합리적 차별을 무시하는 법률이나 정책이 입헌민주주의 헌법의 핵심정신을 근본적이고 반복적으로 (계속해서) 훼손하고 있는 상황에서,
(1) 문제의 악법이 정치과정을 통해서 조만간 개선되리라는 희망이 보이지 않고,
(2) 제도적으로 설정된 설득 및 구제절차의 방법을 통해 정치권력의 의사를 변화시킬 가능성이 조만간에는 미미한 경우(보충성의 원칙)에,
(3) 법불복종이라는 수단의 실현 방식이 필요하고도 적절하다면, 이런 경우에 법불복종은 정당화된다.
4. 법불복종이 필요하고도 적절하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기준을 충족시키는 경우이다.
이하 (중략)....2022.2.4 am:04.15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