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나타났던 다양한 자연법론들 중에서 가장 정교한 논리와 내용을 갖고 있는 것은 중세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론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중세의 사상을 완성시키는 사상가이며, 그의 견해는 곧 당시 가톨릭 교회의 공식 견해, 즉 중세의 교과서적인 사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법에 대하여도 체계적인 사상을 남겼고, 그의 법사상은 종교적인 자연법론으로서 현재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이 이론은 오늘날도 네오토미즘(Neo-Thomism, 19세기 이후에 토마스 아퀴나스의 설을 새롭게 계승하여 현대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가톨릭계의 철학 운동)이라고 계승되고 있다. 우리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자연법 이론을 살펴보면서 자연법의 원리와 내용을 접해 보고자 한다. 특히 실정법에 대한 상위법으로서의 자연법이라는 '상위법의 지배' 페러다임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1. '상위법의 지배' 페러다임
중세의 정치질서와 법질서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는 데 있어서 최고의 정점에선 것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자연법론이다. 알려져 있듯이, 아퀴나스는 고대 로마법학과 스토아학파의 자연법론을 계승하여 영구법(lex aeterna), 자연법(lex naturalis), 인정법(lex humana), 신정법(lex divina) 등 네 유형의 법을 분류한다. 영구법은 나머지 세 유형의 법들의 바탕을 이루며, 우주의 지배자로서의 신이 인식하고 계획하고 명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물리적 법칙과 도덕원리들 모두가 영구법에 포함되는데, 인간은 그 내용을 불완전하게 인식할 뿐이며 불완전하게 인식한 내용도 불확실할 뿐이다. 모든 종류의 합리적 법이나 원리들은 모두 이 영구법에서 연원한다.
자연법은 오직 인간에게만 적용되며 합리적 행동의 본원적 원리들릐 형식으로 나타난다. 자연법은 인간의 실천이성에 내재하는 본질은 인간에게 좋은 것을 꾀하고 나쁜 것은 피하는 데 있다. 그렇다면 자연법의 내용은 이 '좋음'(the good)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달려 있다. 모든 사람이 획득하고자 애쓰는 것이 보편적인 자연적 선(natural good)이라면 자연법의 제1원리는 "(인간에게 본래)좋은 것은 행해지고 추구되어야 하고, (인간에게) 나쁜 것은 피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제1우너리로부터 제2원리들이 나오는데, 이는 첯째로 생명보존의 원칙(살인과 자살의 금지), 둘째로 번식의 원칙(혼인과 자년양육의 요청), 셋째로 진리와 공동생활의 원칙(종교의 요청, 타인에 대한 가해의 금지) 등이다. 자연법의 기타 원리들은 바로 이 제1원리를 구체화하는 것이며, 이는 인간에게 본질적으로 좋은 것(basic human good)과 본질적으로 나쁜 것(harm)을 규명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따라서 자연법의 격률들은 도덕적인 근본원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법은 인간의 이성에 의해 파악된 것으로서 그 자체로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관념적이고 이념적인 것이므로 그것이 구체적인 사안에서 규범력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이렇게 하여 자연법의 보충과 구체화가 주요한 과제로 대두하게 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에 대해 신정법과 인정법을 내세우고 있다.
인정법은 입법자가 인간사회의 조직과 통치를 위하여 고안· 제정한 법이다. 인정법은 합리적인 범위에서 자연법의 원리들로부터 도출된 것이며, 자연법에 의존한다. 신정법은 영구법이 기독교의 성경에 명시적으로 표현되어 나타난 도덕규범들과 법규범들이다. 이는 인간생활에 필수불가결한 기준으로서 인간의 생존과 행위의 구체적 내용들을 제시하고 있는 규범들이다. 즉, 성경에 나타난 도덕규범들과 법규범들을 말한다.
이렇게 법체계를 정립한다고 할 때,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가 제기된다. 문제는 자연법과 인정법이 충돌하는 경우에 과연 인정법의 효력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우선 토마스 아쿠나스의 법개념은 다음과 같다.
① 법은 한 정치적 공동체의 주권자가 제정하고 공포한, 공공복리를 지향하는 이성의 명령이다.
② 법은 한 정치적 공동체를 통치하는 주권자의 실천이성의 명령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통치의 핵심은 자유로운 개인들의 지배이며, 법의 핵심은 법에 기꺼이 복종하는 개인들의 행위조정에 있다. 법은 그 공공성(공포되어야 함), 명확성, 일반성, 안정성, 실행 가능성의 특징에 의해 구성원들을 공공적 논의의 참여자들로 대우하며, 이를 통해 개인들은 서로의 행위들을 조정해 나간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법유형론에서 인정법은 실정법이며, 이 인정법은 두 가지 상이한 방식으로 자연법과 자연권, 즉 보편타당한 도덕원리와 격률들로부터 도추된다. 첯째 방식은 '연역적 추론'에 의한 것(deductio)이다. 둘째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확정'(determinatio)라고 명명한 방식이며, 대부분의 많은 법들이 이 방식으로 형성된다. 아퀴나스는 확정의 방식을 건축의 비유를 들어서 설명한다. 건물 전체 및 문이나 문손잡이의 구조와 형식에 관한 추상적인 관념은 건물의 구체적인 설계도와 구체적인 문의 형태와 문손잡이로 특정될 때 비로서 확정된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것도 건축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설계자가 건축자가 결정한 건물의 구체적인 모습은 짓고자 하는 건물에 관한 기본적인 개념(가령 산부인과 병원)에서 도출되기는 하지만, 건축 방식이나 시설들의 겉모양 및 내부구조, 각각의 재료들은 어떤 것을 선택할지 확정하는 것은 건축자와 설계자의 자유이며 여러 측면을 고려하여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즉, 짓고자 하는 건물의 기본개념과 목적의 범위 내에서라면 건축자의 자유는 충분히 고려되어야 하듯이, 실정법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처럼 둘째 방식으로 자연법에서 도출되는 실정법들은 입법자의 재량에 따라 다양하게 정해지며, 바로 입법자가 제정하였다는 점에서 법으로서의 구속력을 가진다. 즉, 그러한 법들은 이성에 의한 것일 뿐만 아니라 입법자에 의해 제정되었다는 사실에 의해서도 구속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로지 입법자가 제정하였다거나 법원의 판결을 내렸다거나 관습으로 존재한다는 사실(법으로서 승인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법으로서의 구속력을 가지게 되는 것일까? 아쿠나스는 실정법의 내용이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반드시 존중되어야 하는 실천이성의 원리에 부합하는 범위 내에 있을 때 법적 구속력을 가진다고 본다.
그렇다면 상이하지만 나름대로 합리적인 여러 방안들 가운데서 하나를 선택할 때 법적 결정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아퀴나스는 법이 권위적 결정(authorititive decision)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는 점을 인정한다. 법을 권위적 결정으로 본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살아갈지와 관련하여 구성원 각자가 어떤 방향으로 행동할 것인가 또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법이 결정하였을 때 모든 구성원들이 그 법적 결정을 일단(prima facie) 종국적인 해결책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야만 서로 간의 행위조정이 가능해지고, 어떠한 햐ㅕㅇ식이든 사회적 협동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다양하고 상이한 견해들과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행위의 상호 조정과 사회적 협동이 달성되려면 권위적 법적 결정을 필수적이다.이렇게 아퀴나스는 법의 실정성에 매우 커다란 관ㅅ;ㅁ을 보이며, 입법자의 권위와 법의 권위에도 주목을 한다.
2. 정당한 법과 부정의한 법: 정당성과 합법성의 긴장관계
그런데 만일 권위적 결정으로서의 어떤 실정법이 사회구성원들에게 너무나 많은 해악을 끼치고 그들의 문화와 내적 삶에 지속적으로 나쁜 영향을 행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면 그 법을 준수해야 하는가? 아퀴나스에 따르면, 정치적 공동체의 지배자(주권자)가 제정한 규범이라고 해서 모두 법으로서의 구속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며, 입법자가 제정한 규범이 법으로 인정되려면 다음의 요건들을 갖추어야만 한다.
① 이성의 명령일 것
② 공공복리를 지향할 것
③ 통치자에 의해서 제정· 공포될 것
④ 정치적 공동체 전체에 책임을 지며 관할권을 가지는 통치자일 것
⑤ 어떤 행위를 하거나 하지 못하게 할 것
⑥ 강제력을 가질 것
⑦ 준수되어야 함을 의도할 것
여기서 ①과 ②는 법으로서 갖추어야 할 도덕적 요건(실질적 기준)이며, ③부터 ⑦까지는 법을 판단하는 형식적 요건들이다. 만일 한 통치자가 ④의 요건을 제외한 나머지 요건들을 충족하는 규범을 제정하고 공포한 경우, 이를 법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이런 점 때문에 아퀴나스는 ①과 ②의 실질적 요건들은 ③부터 ⑦까지의 형식적 요건들의 충족된 후에야 비로서 법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동한다고 본다. 따라서 ③부터 ⑦까지의 형식적 요건들은 어떤 규범이 법이기 위해서 반드시 충족해야만 하는 기준이다.
위에서 든 ①과 ②의 조건을 충족하는 법들은 정의로운 법일 터인데, 그 요건은 다음과 같다.
① 주권자가 제정한 법규범은 공동선의 실현네 봉사하여야 하고 (ratione finis),
② 제정된 규범의 정당성은 그 규범을 통해서 피치자에게 부과되는 부담이 비례적 평등에 부합하여야 한다는 요청을 충족해야 하며 (ratione formae),
③ 위임된 권한의 한도 내에서 입법자가 제정한 것이어야 한다(ratione auctoritatis).
이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하는 규범은 이성적인 양심의 법정(in foro conscientiae)에서뿐만 아니라 외부의 법정(in foro externo)에서도 구속력이 있는 법규범이 된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제정 법규범은 어떤 효력을 가지는가?
아쿠나스에 따르면, 다음의 세 가지 가능성과 그에 대응하는 세 가지 유형의 부정의한 법들이 존재한다. 첫째, 법이 인간으로서 절대로 행해서는 안 될 졸류의 행위들(강간· 절도· 유아살해 등등)을 요구하고 있다면 각 개인의 도덕적 의무는 그 법에 불복종하고 저항하는 것이며, 법이 개인에게 그러한 행위를 할 권한을 준다면 법이 그러한 권한부여는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나 법적으로 완전 무효이다. 이는 제정법규범이 자연법의 근본원리들, 따라서 영구법(lex aeterna)을 치해하는 경우이다. 이때에는 피치자 측에서의 수동적 저항은 정당할 뿐 아니라 의무이기도 한데, 이러한 자연법의 근본원리들은 신조차도 그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의 제정법규범은 '법의 부패'(legis corruptio)이며 법으로서의 자격을 잃게 된다.
둘째, 입법자가 공동체의 공공복리에 대한 관심에서가 아니라 개인적인 탐욕에서 법을 제정한 경우, 입법자에게 부여된 권한을 넘어서는 내용의 법을 제정한 경우, 그리고 공공복리를 고려하기는 하지만 사회구성원들로서 마땅히 이행해야 할 필수적인 부담들과 의무들을 불공정하게 분배한 법을 제정한 경우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는 제정 법규범이 자연법의 가장 근본적인 원리들을 침해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근본원리들로부터 도출된 자연법의 2차적 원리들을 위반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러한 실정법들은 부정의하며 이성적 양심의 법정에서 법으로서의 구속력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한 법들은 도덕적 의무도 불복종해야 할 도덕적 의무도 지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아퀴나스느느 위에서 든 둘째 단계의 부정의한 법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도덕적 행이와 무질서가 양산되거나 다른 사회구성원들이 그것을 빌미 삼아 전혀 거리낌 없이 법을 어기는 나쁜 행동을 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될 때는 설령 법이(둘째 의미에서) 부정의해도 공공적 이익이나 개인적 이익에 부당한 해악을 미치는 이러한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해야 할 도덕적 의무를 지게 된다는 것이다. 즉, 불복종이 가져올 이익과 해악을 형량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셋째, 제정 법규범이 2차적 자연법규범들 중에서도 그 하위규범들만을 위반하고 있는 경우이다. 이때 피치자는 그 제정법에 복종해야 한다. 가령 실정법이 어떤 측면에서 부정의하기는 하지만 결코 행해서는 안 될 행위들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며 또한 어느 정도 공공이익에 기여할 가능성이 큰 한편,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불공평하게 부담을 지우는 경우이다. 그 법으로 말미암아 법이 부패하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고, 그 법이 개인 자신과 가족의 신체 및 생명에 필수적인 부분을 침해하지 않는다면 일단 복종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적절하다는 것이 아퀴나스의 견해이다.
. . 이하...............(중략) 2022.10.13 Am: 03:28